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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루모이 지역에는 많은 유적이 있습니다. 데시오초의 「가와구치 유적」등 데시오강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에서 추측해 보건대, 그 당시 사람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잡거나 마을 뒤편에 펼쳐진 깊은 숲에서 에조사슴과 토끼 등을 사냥하고 산나물을 채집하며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쇼산베쓰무라의 「쇼산베쓰 유적」과 하보로초 아자치쿠베쓰의「지라이베쓰 유적」, 루모이시의「산도마리 유적」등이 있으며, 1670년 경부터는 어업과 교역에 종사하는 일본사람의 정착이 시작되었다고 여겨집니다.


     루모이 지역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청어잡이입니다. 그 옛날 루모이 지역 연안에 밀려 온 청어들은 연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였고, 많은 청어방야(番屋:고기잡이 작업장 겸 숙박시설)가 지어지며「센고쿠바쇼(千石場所)」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약 150년 전 루모이에 청어 어장이 열리고 난 후 약 1세기 동안은 청어잡이가 이어져 왔지만 일확천금을 꿈꾸게 하던 루모이 연안의 청어는 지금부터 약60년 전을 경계로 그 모습을 감췄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사가케방야(佐賀家番屋)」는 홋카이도에서도 유일하게 건물과 선착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방야로서1997년에 일본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도마마에초에도 1886년에 건축된「오카다야(岡田屋) 청어방야」가 크진 않지만 위엄있는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비라초에서도 청어잡이가 활발했음을 말해주는「구 하나다케(花田家) 방야」(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전성기에는 18개의 통(統:고기잡이 집단의 단위)이 운영되었고, 어부의 수는500명을 훨씬 뛰어 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방야는1905년경에 건축되었으며 홋카이도에서 현존하는 방야 중 최대규모의 건축물입니다.

     이렇게 청어잡이의 황금기 모습을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귀중한 건축물은 모두 홋카이도 유산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청어잡이로 번창했던 마시케에서는 1870년 전후 혼마케(本間家) 초대 당주가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잡화와 직물 판매를 기반으로 해운업과 주조업 등의 활동도 다각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비록 청어잡이는 쇠퇴하였지만 일본 최북단의 이러한 술 창고와 거리는 당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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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시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또 한가지는 바로「구 하보로선」입니다. 1955년10월 개통된 국철 하보로선은 루모이 지역을 남북으로 잇는 길이141km의 종관(縦貫) 철도입니다. 그 옛날 하보로선은 루모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검은 다이아몬드(석탄)와 노란 다이아몬드(가즈노코:말린 청어알)를 가득 싣고 홋카이도 북부의 광활한 벌판을 힘차게 달린, 홋카이도에서 3번째로 긴 노선이었습니다. 하보로 탄광, 지쿠베쓰 탄광 등을 비롯하여 양질의 석탄이 채굴되던 루모이 지역에서 이 철도는 수송의 기둥이었으며, 주민에게는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너지의 주역이 석유로 바뀌면서 하보로선은 그 역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3월 하보로선은 폐지되었지만 연안부의 국도 주변에는 선로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명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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